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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의 살인범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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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22 12:16 조회 2,55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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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 위원회가 가해자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사람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꽤 특이한 범죄 행위가 필요하지만, 

롤링스톤에 따르면, 2018년 여름,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10회 연속 가석방을 거부당했을 때 주어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채프먼은 2000년부터 2년마다 가석방 청원을 냈으나 모두 부결, 2018년 총 10번째 거부당했습니다). 


가석방 위원회는 또한 가석방이 그의 범죄의 심각성을 완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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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8일, 이날 존 레논에게 사인을 받은 채프먼은 그가 살던 뉴욕 맨해튼의 다코타 아파트 밖에서 그의 부인 오노 요코가 지켜보는 가운데 존 레논의 등을 향해  38구경 5발의 총알을 발사했고, 


그 중 4발이 그의 등을 관통하면서 우리는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한명을 읽게 되었습니다. 레논은 루즈벨트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으나 도착하자마자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한편 채프먼은 범행 현장에 서서 총을 들고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호밀밭의 파수꾼'의 복사본을 읽었는데, 


 "이것(호밀밭의 파수꾼의 복사본)이 나의 진술입니다"라고 그가 주장했다고 <가디언>은 전했습니다. 그는 특별한 저항은 하지 않았고 아무 사고 없이 체포되었습니다.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복잡한 남자였다고 합니다. CNN은 그가 텍사스의 포트워스에서 태어났지만 조지아와 일리노이에서 유년시절의 보냈으며, 14세에 마약을 접할 정도로 그의 성장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1975년에는 선교사로 레바논에 파견되기도 하였고 1977년 하와이로 이주, 이후 정신병 증세로 2차례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가 치료를 받은 병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미국 여성 글로리아 아베와 결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본인이 유명해지고 싶다는 망상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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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프먼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을 했습니다. 크리스천으로 다시 태어난 자칭 교수인 그는 "imagine"과 "god"과 같은 노래의 가사가 자신을 격분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자 채프먼은 신이 자신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청구를 '유죄'로 바꿨습니다. 물론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대중화된 집착도 있었습니다. 피플 매거진은 채프먼이 이 책을 홍보하기 위해 레논을 죽였다는 다소 억지스런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채프먼은 더 이상 본인의 행동이 자신이 속해있던 독서 클럽의 모든 회원들을 능가하기 위한 시도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악명을 위해서 그랬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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